라이프로그


내가 너를 위로하는 방법: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 영화: 단상, 가끔은 긴 글




"I fell."

"Me too."

 

 

상처받은 누군가가 자신의 추락을 위로 받는 방법은 여러가지다.

사람들은 섣불리 판단하고 쉽게 위로를 가장한 충고를 하기도 한다.."인생이라는게 원래..." 

사실 별로 도움 안되는 위로이다.

 

 

성숙하지 못하고 위선적인 방법이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진짜 위로란 때때로 아닌 다른 사람의 실패와 추락을 마주하는 것이다. (물론 영화 ‘더 :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이 주는 위로는 타인의 추락을 발판 삼아 까치발만큼 올라서서 느끼는 상대적인 우월감은 절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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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모한 스턴트를 시도하다가 몸이 망가진 로이와 오렌지를 따다가 나무에서 떨어진 알렉산드리아의 만남은, 어쩌면 그래서 처음부터 위로의 힘이 발동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울리고 싶지 않은 아이



영화의 오프닝은 로이의 스턴트 실패와 그를 구조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앞뒤 설명 없이보여지는 오프닝은 흑백의 슬로우모션과베토벤 교향곡 7번의  번째 악장 음악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화킹스스피치에서 콜린 퍼스의 클라이막스 라디오 연설 장면에서 흐르는 음악과 같은 음악이다.)

 장면만 보고 나면 무슨 의미인지 어떤 장면인지 이해할  없지만결국에는 누군가의 추락그리고 추락으로 말미암아 시작되는 후의 혼란들을 하나로 모아주는 훌륭한 오프닝 장면이라고   있다마치 현실이 아닌 것처럼 보여지지만결국은 지독한현실의 시작인  장면이 앞으로 펼쳐질  환상적인 상상들이 결국 지독하고 잔인한 현실의  단면이라는 것을 보여주기때문이다.

 

다쳐서 누워있는 로이와 번쩍 들린  깁스가 되어있는 팔을 들고 총총 걸어다니는 알렉산드리아의 만남은 결국 이렇게 부서진몸을 치유하기 위한 병원에서 이뤄진다

로이가 알렉산드리아에게 그녀가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은 단순히 본인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였다.

움직일  없는 자신 대신 알렉산드리아가 그의 인생을 끝내줄 몰핀을 대신해서 운반해주길 바랬기 때문이다.

그녀가 듣고 싶어하는 가장 재미있는 부분에서 이야기를 끊고 잠이 모자라서 이야기를   없다는 핑계로 그녀에게 몰래 약을가져오라는 심부름을 시킨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알렉산드리아의 움직임과 감정에 집중하게 만드는 것은 주인공 역할을 맡은 배우의 깜찍하고 자연스러운 연기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물론 앞니   없는 소녀의 귀여움이야 어마어마하지만결국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모르핀이 있는 약국으로 대장정을 떠나는 아이를 지켜주고 싶어하는 본능적 감각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깨어나기 때문이다.

 

마지막 순간 로이와 알렉산드리아가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순간,

로이의 마음을 울컥하고 움직였던 것은 결국 인생의 잔악하고 어두운 이면을 울리고 싶지 않은 아이알렉산드리아에게 보여주고싶지 않은 마음이 동하였기 때문이었다.



너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로 변하는 순간

 

아이에게 들려주는 로이의 이야기는 시시때때로  분위기가 달라진다.

코끼리를 타고 섬을 탈출하는 신비하고 매혹적인 이야기는 어느 순간 오디어스에게 죽임을 당한 주인공의 형이 천장에 매달려있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로 변주한다.

 

로이와 알렉산드리아의 현실 상황에 따라 때때로 변하는 로이의 환상  이야기는 영화를 보는 내내  가지 스토리 라인이 따로가는  하면서도 결국 밀접하게 연결된 하나의 이야기라는 점을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 주지 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현실과  관련 없이 그냥 즉흥적으로 흘러가는 듯한 이야기는 어느 순간 로이와 알렉산드리아의 실제 인생에 깊숙하게 자리한다.

아무렇지 않게 만들어 내는 환상의 이야기는 현실과 극명한 대비가 되기도 하고 잔인하게 겹쳐지기도 하면서 어느 순간 아련하고묵직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수술대에 누워있는 알렉산드리아에게 이야기의 마무리를 들려주면서 주인공들을 하나하나 죽이는 로이에게 알렉산드리아가말한다.

 

 모두를 죽이는 것이냐고.

이건 나의 이야기기 때문이야.

 이야기이기도 해요.

 

처음 병원에서 만난  주인공이 결국 절망과 추락의 순간에서 만나 위로의 정점을 찍는 것은서로의 아픔이  위로로 다가오는순간에 가능해진다.

 이야기가 너의 이야기로 변하는 순간어디에서부터 오는 힘인지는   없지만 희미하면서 분명한 발돋움의 힘이 생겨난다.

 

 소통의 이야기는 비단 영화   주인공 간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영화를 보는 사람에게도  위로의 말과 감정이 영화 전반의 아날로그적 감성을 타고 흐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화면을 구성하는 아날로그적 방법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정성이 함께 느껴질만큼 정교하고 압도적이라고 생각한다당시  영화가 개봉했을  어느 평론가의 한줄평이 아직도 생각난다 보면 후회도 못한다.)


 

내가  위로하는 방법

 

이미 한참 전에 개봉했던그래서 많이 기억하지 못하는  영화를 가지고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하나이다.

또다시 바닥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영화를 다시 보고 느꼈던 감정의 울렁임이 아까워서이다.

 

말로 다할  없는 위로의 감각을 지금 어디론가 떨어지고 있거나 혹은 추락의 직전에 서있는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다.

내가  위로하는 방법은 시덥지 않은 충고가 아니라,

내도  겪어본 일이라 안다는 그냥 그런 말이 아니라,

 

너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되기도 한다는  말을 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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